새로운 사태 - 인격의 자유
인간은 하느님의 영원 불변한 법과 보편적 섭리 안에서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까지도 내다보는 폭넓은 인식 능력과 자유 덕분에 자신을 스스로 보살필 줄 안다. 따라서 인간은 일시적 순간뿐 아니라 장래를 위해서도 자기의 삶을 꾸려 나가기에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방편들을 선택해야 한다. 이는 땅에서 생산되는 결실들을 향유하는 권리 이외에도 땅 자체를 소유할 권리를 인간이 가지고 있으며, 또 인간은 풍요로운 생산물들에 힘입어 미래에 대비한다는 말과 같다.
(레오 13세 교황, 회칙 <새로운 사태> 5항)
새로운 사태 - 인권의 토대
두 계층이 복음의 법에 순종한다면 단순한 우정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형제적 사랑의 결속을 염원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사람이 만인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로부터 태어났으며 궁극 목적이신 하느님께로 향해 나아가고 있고 하느님 홀로 사람들과 천사들을 완전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았고 그들 서로만이 아니라 "많은 형제들 중의 맏아들"이신 주 그리스도와 결합되도록 하느님의 자녀의 품위에 부르심을 받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자연의 재화와 은총의 보화가 인류의 공동 유산이고 자신의 결함이 없다면 천사의 보화들을 상속받는 데에 제외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느끼게 될 것이다. "자녀가 되면 또한 상속자도 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을 받을 사람입니다." (로마8,17) 바로 이것이 복음 안에 내포되어 있는 이상적인 권리와 이상적인 의무이다. 복음이 세상 안에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면 온갖 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회복되지 않겠는가?
(레오 13세 교황, 회칙 <새로운 사태> 18, 19항)
어머니요 스승 - 개인의 자유공간
공권력의 경제에 대한 배려가 광범위하여 사회의 사사로운 분야에서까지 미친다 하더라도, 그 개입은 개인의 행동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증진시켜야 하며 그럼으로써 인간 기본권의 보호를 보장하여야 한다는 것은 언제나 옳다.
(요한 23세 교황, 회칙 <어머니요 스승> 55항)
지상의 평화 - 생명권과 생계권
모든 인간은 생존, 육신 전체, 생활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절대적인 권리를 갖고 있으며, 특히 양식, 의복, 주거, 숙식, 등에 관한 권리가 있으며 의사들의 치료와 그 외 정당한 사회적 봉사 등을 받을 권리가 있다. 또한 인간은 병고, 노동력의 결여, 과부 신분, 노환, 실업 등에 처했거나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생존 방법을 상실하는 경우에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요한 23세 교황, 회칙 <지상의 평화> 11항)
지상의 평화 - 하느님 신앙에 대한 권리
인간은 올바른 양심의 명령에 따라서 하느님을 공경할 권리가 있는데, 바로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하느님께 대한 예배를 드릴 권리이다. 이는 락탄시우스(Lactantius)가 분명하게 언급한 바와 같다. "우리 인간은 창조주 하느님만을 인식하고 따르며, 그분께만 공경을 마땅히 드릴 목적으로 창조되었다. 인간이 하느님께만 묶여 있고 매여 있다는 신심에서 종교라는 이름이 유래하고 있다."
(요한 23세 교황, 회칙 <지상의 평화> 14항)
지상의 평화 - 인권
국제연합에서 만들어진 가장 중요한 문헌은 1948년 12월 10일 총회에서 인준된 [세계 인권 선언]이다. 이 선언의 전문에서 모든 국민과 국가에서 요구하는 것은 이 문헌 안에 있는 각개의 권리와 자유에 관한 사항들을 효과적으로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것이다. 이 선언의 이런 특별한 조항들에 대해서는 또 다른 측면에서 이의 제기가 될 수 있고, 인정받지 못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선언은 세계 공동체의 법적, 정치적 조직을 위한 중요한 진일보를 의미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실, 이 선언은 모든 인간에게 더욱 장엄하게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자유롭게 진리를 탐구하는 기본권을 선언하며, 윤리적 선과 정의를 실현하고, 품위 있는 인간 생활을 전개할 권리와 위에서 말한 것과 연관을 맺는 다른 권리들을 인정하고 있다.
(요한 23세 교황, 회칙 <지상의 평화> 143, 144항)
기쁨과 희망 - 분열을 겪는 인간
참으로 현대 세계를 괴롭히는 불균형은 인간의 마음속에 뿌리박힌 더욱 근본적인 저 불균형에 직결되어 있다. 바로 인간 자체 안에서 여러 요인들이 서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한편으로는 피조물로서 여러 가지로 자기 한계를 체험하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참으로 무한한 자기 욕망을 느끼며 더 높은 삶으로 부름 받았음을 자각하고 있다. 수많은 유혹에 이끌리는 인간은 끊임없이 어떤 취사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더구나 인간은 연약하고 또 죄인이므로 바라지 않는 일을 하고 바라는 일을 하지 않는 수가 드물지 않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자신 안에서 분열을 겪고 있으며 바로 거기에서 이토록 허다한 사회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 10항)
민족들의 발전 - 평화의 새 이름은 발전
하느님의 계획대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발전시키도록 태어났다. 인간은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어떤 사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후일에 발전시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능력과 소질의 씨가 날 때부터 부여되어 있다. 사회적 환경에서 받는 교육이나 아니면 자신의 노력으로써 각 사람은 타고난 소질과 능력을 충분히 발전시켜 마침내 창조주로부터 정해진 목적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지성과 자유를 부여받은 인간은 자신의 구원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발전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지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교육하거나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이 같은 외적 유혹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자신의 행복과 불행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동 역할은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다. 지성과 의지의 능력을 발휘함으로써만 각자가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고, 더욱 가치 있게 되고 자신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바오로 6세 교황, 회칙 <민족들의 발전> 15항)
가정 공동체 - 인간 성性의 본질에 대하여
남자와 여자가 부부에게만 국한된 정당한 행동을 통하여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 주는 성(性)은, 결코 순전희 생물학적인 것만은 아니고 인간의 가장 깊은 존재와 관련됩니다. 성은 남자와 여자가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사랑의 일부일 경우에만 진정으로 인간적입니다. 만일 현세적 차원을 포함해서 전 인간이 걸려 있는 완전한 자기 증여의 징표와 결실이 아니라면, 만일 인간이 완전히 바쳐지지 않는 행동을 통해서 어떤 것을 보류하거나 미래에 달리 결정할 가능성을 유보하는 경우라면, 온몸을 내어 준다는 것은 한갓 거짓에 불과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가정 공동체> 11항
가정 공동체 - 여성의 존엄
각종의 공적 기능을 이해하는 데에 여자와 남자가 동등한 권리를 지닌다고 인정해야 하지만, 아내와 어머니들이 실제로 집밖의 노동에 강요되지 않고 그들이 전적으로 가정일에 전념함으로써 그들의 가정이 품위 있게 살고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그러한 사회가 건설되어야만 합니다. 더 나아가, 가정 내의 노동보다는 가정 밖의 노동 때문에 여자를 더 인정하는 정신은 극복되어야 합니다. 남자는 인격적인 존엄성을 근거로 진정으로 여자를 존경하고 사랑하며, 사회는 가정 내의 노동을 유리하게 하는 조건을 창조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 바로오 2세 교황, 권고 <가정 공동체> 23항
백주년 - 인간의 이해
인간은 경제적 평가의 측면에서만 이해될 수 없으며, 단순히 어떤 계급에 속하는지에 따라서 정의될 수 없다. 만일 인간이 그의 언어, 역사 그리고 실존의 주요 사건들 안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로서 출생, 사랑, 노동 그리고 죽음을 통하여 문화권 내에 놓여질 때에, 그는 더욱 완전히 이해된다. 모든 것 중 가장 위대한 신비, 즉 하느님의 신비 앞에 서 있는 인간이 모든 문화의 핵심을 차지한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백주년> 24항)
백주년 - 자유와 사회
자유를 위해 창조된 인간은 자신 안에서 계속해서 그를 악으로 이끌며 그로 하여금 구원이 필요하도록 하는 원죄의 상처를 지니고 있다. 이 교의는 그리스도교 계시의 필수적 부분일 뿐 아니라, 인간적 현실을 이해하도록 많이 도와주는 한, 큰 해석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인간은 선을 향하고 있으나, 악을 행할 수도 있다. 인간은 자신의 직접적 이익을 초월할 수 있으나, 동시에 그것에 매여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더 많이 고려할수록, 개인들의 이익을 전체 사회의 선에 선행시키기를거부하며, 오히려 풍옥한 조화를 찾을 수 있도록 사회 질서는 그만큼 안정될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백주년> 25항)
생명의 복음 - 생명에 대한 음모
이러한 관점에서 현 상황을 바라본다면 약자에 대한 강자의 싸움이라는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곧, 더 큰 수용과 사랑과 보살핌을 요구하는 생명은 쓸모없는 생명이라고 여기거나 참을 수 없는 짐으로 생각하며, 따라서 이런저런 방식으로 그러한 생명을 거부합니다. 병이나 장애 때문에, 더 간단하게는 단지 존재 그 자체 때문에, 더 좋은 조건을 갖춘 사람들의 복지나 생활 양식을 위협하는 사람을 거부하거나 없애 버려야 할 적으로 여기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일종의 '생명에 대한 음모'가 이루어집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생명의 복음> 12항)
생명의 복음 - 자신의 죽음에 대한 권리
불치병 환자와 죽어 가는 사람에게 드리운 위협도 그에 못지않게 심각합니다. 고통을 직면하여 받아들이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상황 속에서, 고통의 뿌리를 없앰으로써, 적절한 어떤 순간에 죽음을 앞당김으로써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유혹이 대단히 커지고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생명의 복음> 15항)